• 최종편집 2020-07-09(목요일)


부산에 온 스페인 ‘MTA’와의 특별한 3일

사회적 경제 상징,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교육단체 MTA

부산의 협동조합 ‘고치’와의 협업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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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4.2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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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정서원 배움과 실천의 공동체 고치 이사
정리=정치섭 기자 btip@mbus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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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배움과 실천의 공동체 고치 이사

“올라(Hola, 스페인어로 안녕)!”
지난 2월 스페인의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Mondragon Team Academy, 이하 MTA)’ 학부생 10여명이 2박 3일 일정으로 부산에 있는 협동조합 ‘고치’를 찾았어요. 지속적으로 교류해 부산에서 함께 할 것들을 찾으려고 고치를 방문한 거죠.
MTA는 몬드라곤 협동조합(Mondragon Corporation)의 교육 프로그램이예요. 전 세계 사회적 경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돼 세계 최대의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성장했어요. 그러다가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와 2013년 협동조합의 역사인 ‘파고르(FAGOR)’ 전자 가전부문 파산을 거치며 인재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죠.
그 결과로 탄생한 게 MTA예요. MTA가 독특한 이유는 교육프로그램에 있어요. 철저히 실무 중심이죠. 교수 대신 ‘팀 코치(Team Preneur)’가 있고, 4년의 학부과정에서 학생들은 실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회사를 설립해 세계를 무대로 수익을 내고 배분하는 일을 해요.
그런 측면에서 MTA가 부산의 협동조합 고치를 찾았다는 건 우리 단체의 입장에서는 큰 사건이었어요. MTA 한 관계자의 말이 떠올라요. 그는 “고치가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설립자 호세 마리아 신부와 닮은 철학을 가지고 8년간 활동한 것에 큰 관심이 생겼다”며 “고치와 지속적으로 교류해 부산에서 함께 할 일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했어요.
자, 이제부터 몬드라곤 협동조합과 MTA, 그들의 방문 계기, 그리고 고치에 대해 자세히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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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진구 초읍동에 위치한 스페인 레스토랑 프린체.
사회적경제 심장, 몬드라곤 협동조합
기독교 성지(聖地)가 예루살렘이라면, 사회적 경제의 상징은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이예요. 1941년 스페인의 작은 마을 몬드라곤(지명)에 부임한 호세 마리아 신부는 내전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젊은이들에게 협동정신과 기술을 가르쳤고, 1956년 5명의 젊은이와 함께 난로를 생산하는 노동자협동조합 ‘울고르(Ulgor)’를 설립했다고 해요.
몬드라곤은 세계 최대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성장해 2009년까지 250여개 기업체에 약 8만5000명이 근무하는 거대한 연합체가 됐죠.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스페인 남부 부동산 거품 붕괴 여파로 2013년 몬드라곤과 역사를 함께 한 ‘파고르(FAGOR)’ 전자의 가전부문은 끝내 파산했죠. 파고르의 전신이 바로 울고르예요. 그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을 거예요.
몬드라곤 사람들은 위기를 극복할 동력으로 ‘참여와 연대, 혁신’을 내세웠어요. 동시에 자신들과 주변을 바꿀 혁신적인 역량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MTA는 이 같은 흐름에서 2009년 탄생했어요.
 
학부과정에서 회사를 경영하다
앞서 말했지만, MTA의 학부과정은 독특해요. 우리가 경험한 걸 바탕으로 학교를 떠올리면, 교실이 있고 거기서 가르치는 선생님과 배우는 학생이 있잖아요? MTA는 교실과 선생님, 학생이 없어요. 대신 24시간 개방된 사무실이 있고, 15명 안팎의 학부생이 팀을 이뤄 전 세계를 무대로 여행하고 공동생활을 해요. 선생님을 대신해 팀 코치(Team Preneur)가 전 과정의 조력자 역할을 해요. 그들은 (교수가) 가르치지 않는데도 배우는 게 있다고 했어요. 이해가 되나요? 저는 일방적이고 주입식인 교육과는 다르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MTA 학부생들은 팀을 꾸리고, 팀은 알아서 자금을 모으고 사업을 진행한다고 해요. 수익을 내고 이를 배분하는 등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생산, 마케팅, 판매, 세금계산서 발행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한다는 거죠.
MTA 학부과정은 레인(LEINN)이라고 불러요. 리더십(Leadership),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혁신(INNovation)의 약자인데 이들이 융합된 4년제 과정이죠. 학부생들은 팀 단위로 4년간 세계를 여행하며 현지 전문가, 기업가를 만나 상호작용해요. 실제 회사를 만들고 팀을 운영하며 고객을 만나 실전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수행해요. 이 과정에서 학부생들은 스스로 배움을 만들어가는 창조적‧개방적 팀 기업가로 성장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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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MTA 학부과정 학생이 지난 2월 21일 2박 3일 일정으로 협동조합 고치를 방문해 기념촬영하고 있다.
부산에 온 MTA
고치의 멤버인 고은세 프린체 셰프가 스페인에서 맺은 인연이 계기가 됐어요. 프린체는 협동조합 고치가 부산 초읍에서 운영하는 스페인 레스토랑이예요. 고 셰프는 앞서 서울에서 열린 MTA 글로벌 네트워크에 참석해 MTA의 마르켈(Markel)씨, 마누엘(Manuel)씨, 욘(Jon)씨, 아니야(Ania)씨와 만났고, 부산과 스페인 청년이 교류하는 기회를 만들자고 했죠.
놀랍게도 우리의 가치관은 닮아있었어요. 마르켈씨가 고치의 가치관을 물었고, 고 셰프는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전체를 위해(All for one, One for all)’라는 취지로 답했어요. 그 자리에 있던 MTA 관계자는 우리의 가치관이 몬드라곤 설립자의 철학이 아주 비슷해서 놀랐대요. 저희도 놀랐죠. 지구 반대편의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서로 닮은 철학과 경험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로부터 3주만에 MTA의 10여명의 팀원들이 부산에 온 거예요.
 
식사를 나누고, 식구가 되다
2박 3일간 고치와 MTA의 교류는 프린체에서 이뤄졌어요. 프린체는 원래 고 셰프가 혼자 운영하다가 고치와 함께 하게 됐죠. 고 셰프는 과거 세상을 바꿀 대안을 찾으려고 비행기표 한 장을 들고 몬드라곤으로 날아갔고, 2년간 스페인 생활을 했어요.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프린체를 열었어요. 프린체는 바스크어(스페인 북부‧프랑스 남부‧피레네 산맥 지방의 언어)로 ‘어린왕자의 집’을 의미해요. 고치도 보금자리, 집의 의미를 담고 있죠. 우리는 MTA 친구들이 고치와 프린체를 집으로 여기길 바랐어요. 그래서 밥을 준비했죠. 첫째 날은 스페인 가정식을, 둘째 날은 프린체의 요리를, 셋째 날은 한국식 ‘집 밥’을 대접했어요. 이에 대한 답례로 MTA 학생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독특한 교육프로그램과 가치,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전했어요.
 
고치와 MTA
MTA의 아니야씨는 “고치가 활동해온 방식과 MTA‧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일하는 방식이 닮았다”고 했어요. 세계 각지에서 온 전혀 다른 문화와 습관을 가진 청년들이 한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한다는 거죠. 관계 속에서 부딪히고 갈등이 생기는 건 필연적이죠. 실수, 실패, 좌절도 겪어요. 아니야씨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그는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많이 변한다”며 “스스로를 변화시켜 갈등을 극복하고 실패를 넘어서는 경험, 타인을 변화시키는 경험 등을 통해 팀이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이 사업의 커다란 동력이다”고 조언했죠.
고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활동한다기보다, 평생을 함께 살아가보려 해요.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하기에 활동과 일을 하는 것일 뿐, 활동과 일에 매몰되기보다 함께 해나가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보람과 동기를 느끼며 전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전체를 위해(All for one, One for all)’는 그런 의미예요. 아니야씨도 이 같은 고치의 성격이 MTA와 닮아있다고 강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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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조합 고치와 스페인 MTA 학생들의 모습.
고치에서 나비로
마누엘씨와 나눈 대화를 소개할게요.
“3학년이 되면 인도 콜카타에 위치한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를 하게 된다. 극빈층을 위해 세워진 병원이다. 사전조사를 통해 우리는 특권층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가 몬드라곤에서 태어났기에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 노력하지 않아도 운이 좋아서 받았던 것들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저 회사를 만들어 돈을 벌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게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만남의 의미는 마누엘씨의 말 속에 잘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누린 혜택을 되짚어볼 기회라는 의미 말이예요.
MTA가 몬드라곤이라는 기반과 철학이 있다면, 우리는 배움과 실천의 공동체 고치라는 오랜 기반이 있어요. 지칠 때 쉴 틈을 주고, 방향을 잃으려 할 때 존재만으로 정신줄을 ‘단디(단단히의 방언)’ 붙잡아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요즘 나는 ‘동료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부산은 청년들이 오래 정주하며 자신의 터를 마련할 정서적‧재정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죠. 동료가 되려면 그들과 마주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오랜 시간 나를 지켜봐준 성숙한 어른이 있고, 동료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는 거예요. 자신과 타인의 연결성을 깨닫고 스스로 우뚝 서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은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어요. 한 사람이 전체 속에 역할을 찾고, 스스로 존재를 깨닫게 하는 중요한 장치가 되죠.
MTA를 만나며 훗날 아카데미로 성장한 고치의 모습을 상상했어요. 내가 30, 40대가 됐을 때 몬드라곤 지방의 청년들처럼 고치의 긍지와 자부심을 물려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실현될 거라는 강한 소망과 갈증을 느낀다면 ‘All for one, One for all’이라는 고치의 슬로건처럼 함께 믿어줄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수많은 동료들과의 만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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