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0-18(목요일)


[법조IN] 류승미 변호사

우아한 법조인 꿈꾸는 법조계의 ‘어퓨굿맨’

“교도소 중범죄자 앞에서도 대찬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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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1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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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원 기자 7toy@mbusan.co.kr

 

류승미 변호사 (2).jpg

 

군(軍)법정에 선 대령이 독기 어린 눈빛으로 중위를 쏘아보며 “넌 진실을 감당 못해”라고 소리쳤다. 대령은 다른 사병에게 폭행을 지시해 한 이병을 숨지게 만든 혐의로 법정에 섰다. 하지만 젊은 중위는 대령에게지지 않고 “진실을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 ‘어퓨굿맨(a few good men)’의 한 대목이다. 법조인들은 때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사에게, 때론 중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기가 눌리지 않으며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류승미 변호사는 어린 시절 우연히 본 이 영화를 통해 법조인의 꿈을 키웠다. 류 변호사는 “변호사는 정말 만만치 않은 직업이다”며 “교도소에 가서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만나거나, 욕심이 가득한 인물을 만나도 기 죽지 않고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대차야 한다”고 설명했다. 류 변호사는 부산 연제구 법원로 김현철 법률사무소의 소속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류 변호사의 꿈은 법조인으로 한결 같았다. 법대(法大) 진학의 꿈도 확고해 부산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사법시험 준비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었다. 류 변호사는 “대학 선후배들과 어울리기 좋아해 홀로 도서관에 앉아있고, 혼자 밥을 먹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 때마다 류 변호사를 다잡아 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는 “내가 요리를 하면 어머니는 ‘만들어 먹는 사람 말고 사먹는 사람이 되라’고 말할 정도였다”며 “사법시험 2차에 처음 떨어지고 좌절할 때 ‘다시 도전하라’고 격려한 분도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가 영향을 받은 영화 어퓨굿맨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소수정예’란 뜻이다. 최근 변호사가 늘어나 경쟁이 치열한 법률시장에서 류 변호사는 어퓨굿맨을 꿈꾼다. 경쟁력을 갖춰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류 변호사는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 여성 법조인으로서 멋지게 늙어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법조인의 꿈은 언제부터 꿨는지.

"중학교 3학년부터였다. BBK사건에 연루된 에리카 김이 쓴 에세이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책을 봤다. 이 책은 여성 변호사의 삶을 그렸다. 이 시기에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어퓨굿맨’도 법조인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장래희망에 법조인을 쓰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부산의 이사벨여고(現 이사벨고) 출신인데 선생님들은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에게 교대를 추천했지만 이미 법대(法大) 진학을 마음먹은 상태였다. 부산대에 진학해 동아리 활동에 빠졌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 탓에 도서관에서 자리에 앉아있기 힘들었다. 인간관계를 차단하는 게 아주 힘들었다. 은행권에 취업하고 결혼도 하는 주변을 보며 불안감도 들었다. 사법시험에 떨어지는 사람도 많았고, 사법시험은 공부로만 끝나는 시험도 아니었다. 그 때마다 어머니가 붙잡아줬다. 열심히 공부해서 전문직이 되라고 조언했다. 집에서 요리를 할 때면 어머니는 ‘만들어 먹는 사람이 아니라 사먹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고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다. 이렇게 독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부했다. 같은 해 2차에 떨어졌을 때는 좌절감이 컸다. ‘한 번 더 해보라’는 어머니의 격려와 지원이 힘이 됐다. 이듬해 2차까지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거쳐 서울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생각보다 이 직업이 정말 힘들다고 느꼈다. 물론 대기업 입사한 직장인처럼 상사나 직장동료에게 치이는 일은 없었다. 업무상 존중 받거나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없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들을 마주할 때 ‘결코 만만하거나 흐리멍덩해서는 상대할 수 없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온실 속에서 공부만 하던 사람이었다. 물론 점차 적응이 됐다. 이 일은 기가 세야 한다. 사법연수원만 봐도 그랬다. 연수원은 한 반에 60명이고 그 중 20명이 한 조를 이룬다. 스스로도 기가 세다고 생각했지만 연수원 동기들은 한 명도 만만한 사람이 없었다. 적응기가 끝나고는 변호사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도 다른 사람이 우물쭈물 말을 못할 때 잘 대변해줬다.”

 

류승미 변호사 (3).jpg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온건지.

“결혼하고 가족을 꾸렸으면 서울에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홀로 생활하며 외로움이 컸다. 경남 창원의 한 로펌 변호사 선배들과 인연이 있어 창원으로 향해 4년간 일했다. 연차가 낮은 변호사들은 대표를 잘 만나야 한다. 도제식으로 배우다보니 대표의 가치관, 노하우, 경험, 변론방향 등을 믿고 배울 수 있는 대표를 찾았다. 창원의 소속 로펌이 지역 법률시장에서도 변론으로 정평이 나있어 그곳에 정착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부산의 사건을 하나 맡게 됐다. 고향이라 잘 아는 지역이었고, 내가 더 관심을 갖고 사건을 대하는 걸 느꼈다. 그래서 부산으로 향했고 마침 김현철 변호사가 소속변호사를 찾고 있어 올해 3월부터 인연을 맺게 됐다. 앞서 말한 대로 많은 점들을 배우고 존경할 수 있는 법조인 선배라는 점도 이유다.”

 

-변호사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면.

“변호사라는 직업이 고귀하고 마냥 존경만 받고, 험한 일은 하지 않는다고 착각할 수 있다. 막연히 외관에 빠질 수 있다. 예전에는 변호사가 적고 법조계가 폐쇄적이니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힘든 직업이다. 형사소송에서는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범죄자를 직접 대면해야 하고, 이혼소송에선 억울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들을 많이 대해야 한다. 이들을 대면하고도 기죽지 않고 대할 수 있는 대가 센 사람들이 변호사라는 직업에 맞는 것 같다. 험한 일 속에도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공사대금 수십억원이 재판결과에 좌우될 수 있는 드라마에서 볼만한 민사사건도 있는데 겁먹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만나는 사람이 다양하다. 스스로도 단단해지는 것 같다. 여성 변호사의 비율은 높아졌지만 오래 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성으로 외모를 가꾸기도 어렵다.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머리가 하얗게 세더라도 사건을 생각해야 한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늙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한 법정에 들어가서 재판장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머리가 하얀 여성 판사였다. 화장기 하나 없고 장신구도 없는 상태에서 흰머리가 우아했다. 그 뒤로 생각했다. 직업적으로 돈만 벌다 은퇴하겠다는 게 아니라 법조인으로서 커리어를 쌓으며 늙어가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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