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27(목요일)


[법조IN] 조민주 변호사

“의뢰인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균형감 갖춰야”

부친 산재소송 경험, 법조인 결심 굳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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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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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섭 기자 btip@mbusan.co.kr

 

조민주 (2).JPG


조민주 변호사는 30대 워킹맘이다. 두 달 전 출산한 아이까지 두 자녀를 키우며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당찬 변호사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일이다. 재판이 있는 곳이라면 부산을 벗어나 서울과 대구로 향했고, 사건 당사자가 있는 구치소와 교도소를 방문한 것도 수차례였다. 조 변호사는 가정·일 양립에 대해 “모르면 용감한 법이다”며 웃으며 말했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법조인을 꿈꿨다. 가정 형편 탓에 맘껏 공부하지 못했던 그의 아버지가 법조인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조 변호사는 아버지의 꿈을 무겁게 느꼈다. 학업성적이 좋아 부산대 법학과에 진학했을 때 그의 부모는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정작 조 변호사는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법조인의 결심을 굳힌 계기는 뒤늦게 찾아왔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 중 아버지가 산업재해를 당해 소송이 진행됐다. 1심은 패소했다. 2심에서 선배 변호사의 조력으로 원심을 뒤집고 아버지가 승소했다. 조 변호사는 “이 사건을 보며 의뢰인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조 변호사는 좀처럼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다. 변호사 수가 2만명을 넘어 3만명으로 향하는 상황. 그는 법률시장의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 변호사는 “전문분야를 특화하거나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부산지방변호사회 여성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동래경찰서 집회시위자문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변호사 꿈을 꾼 계기는.

“부산대 로스쿨에 다닐 때 일이다. 아버지가 산업재해를 당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하게 됐다. 1심에서 패소했지만, 변호사의 조력을 제대로 받은 2심에서 승소했다. 이때부터 변호사가 돼야겠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졌다. 변호사가 된 뒤 아버지에게 도움을 준 선배 변호사를 찾아가 감사를 전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도 막연하게나마 법조인 꿈꿨다.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경남 거창군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는 어릴 때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한 게 한(恨)이었다. 당시엔 공부를 잘하면 법조인이나 의사가 되는 분위기였다.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법조인이 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다닌 부산 서구 부민초등학교 바로 옆에는 옛 부산지방법원(현 동아대 부민캠퍼스)이 있어 학교에 다니며 자연스레 법원 건물을 마주했다. 초등학교 친구들의 아버지 가운데는 판·검사, 변호사도 있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어 부산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진로에 대해 고민한 시기도 있었지만 로스쿨 재학 중 아버지의 산재소송을 계기로 결심을 굳혔다. 변호인의 조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경험이었다.”

 

-두 자녀를 둔 워킹맘으로 힘들지는 않은지.

“두 달 전 출산해 아이가 둘이다. 변호사 개업과 동시에 첫째를 임신했다. 임신 사실을 먼저 알았다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전까지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에 일을 병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임신을 핑계로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서울과 대구 등에서 열리는 재판에 다녔고, 교도소와 구치소도 자주 갔다. 재판준비를 위한 야근은 물론이고 출산 전날까지 출근했다. 출산이 임박해 산통(産痛)을 느끼면서도 걸려온 전화를 받아 법률상담을 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건 쉽지 않지만 평일에는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을 돌봐줘서 안심하고 집중해서 일할 수 있다. 가족들의 배려와 도움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한창 자라는 큰아이와 평일에 놀아주지 못하지만, 함께 있을 때는 즐겁게 보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조민주 (1).JPG

 

-기억에 남는 사건은.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러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두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치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시간이 지체돼 뇌출혈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멀쩡했던 집안 가장이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 끝에 숨진 것이다. 유가족들의 상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유독 이 재판이 있는 날이면 흐리거나 비가 왔다. 남편을 잃은 아내가 해준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남편에게 잘 해주지 못한 것만 생각나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진심을 다해 사건에 임했다. 재판 결과 병원의 과실을 인정받았다. 결과도 기뻤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느끼게 해준 사건이다.”

 

-법조인을 꿈꾸는 청년들에 대한 조언한다면.

“선입견으로 사람과 사건을 대하지 않길 바란다. 적절히 공감하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법률 지식이 풍부하다고 훌륭한 변호사가 되진 않는다. 변호사라면, 예를 들어 존속살인을 저지른 아들이나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를 변론하는 경우도 있다.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수 있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사전에 범죄를 막는 게 최선이지만, 변호사에게 사건이 올 땐 이미 발생한 이후가 대부분이다. 이때 선입견을 가지면 사건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거나 의뢰인에 휘둘리기 쉽다. 적절한 공감과 경청으로 사건을 객관적이고 균형 있게 봐야 한다. 또 법조인이라면 인권 보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공익적 역할에 대한 책임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민주 (4).jpg

 

-최근 변호사들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매년 1500명 이상 변호사가 배출되며 변호사 시장이 변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송무(소송)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변호사를 필요로 한다. 법률시장이 개방되고 변하는 것 같다. 이에 대응하려면 전문분야를 특화하거나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다양한 인맥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엔 한국주택금융공사 비상임이사, 부산시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 부산시의회의원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회 위원, 부산동래경찰서 집회시위자문위원회 위원, 부산금정경찰서 선도심사위원회 위원, 부산지방변호사회 여성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여러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비영리 활동도 많다. 이런 활동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변호사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자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부산시 장학생에 선발돼 장학금을 받는 등 주변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신적으로도 멘토가 돼주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틈나는 대로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상담, 기부활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 장학재단 설립을 꿈꾸지만 여기에 국한되지 않고 위기의 청소년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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